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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던 날. 
                         당신이라는 사람을 만났던 날.
                         그날이 내겐 희망이었어. 

                - 서지수의 생각에서 발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지수씨는 언젠가 훌륭한 영웅이 될거에요."

"뭐?"

임무를 마치고, 사이다 한 캔으로 목을 축이려던 내게 당신이 말했어.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라 의문형으로 답했지만, 곧 머릿속에서 문장을 이해하곤 헛웃음을 지었지.

"내가 무슨 영웅이 되겠어."

"지수씨는, 가능해요. 다른 사람들을 위해주고 클로저로서의 소명을 다 해주고 있잖아요?"

"다른 견해로 말하자면, 모든 클로저들도 가능하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실력으로 따지자면, 나보다 당신쪽이 훨씬 뛰어난데. 어떻게 내가 그런 당신을 제치고 영웅이 되겠어. 그런 생각을 가지고 꺼낸 나의 말에도, 당신은 그저 입꼬리를 올릴뿐이었어. 

"아니, 가능해요. 지수씨는 강인하니까요."

"... ... ."

어떤 모습의 날 보고, 그런 확고한 단언을 하는 것인지. 궁금해져서 당신의 눈을 보았어. 그런 내 행동에, 당신도 가만히 날 보았지.

이채로 이루어진 그 눈빛에, 처음으로 '아름답다' 라는 느낌을 가진건 오랜만이었어.


"어이, [     ]! 임무 발령났다고, 어서 가야해!"

"알겠어!"

"지수씨, 저는 이만 가봐야할 것 같네요. 나중에 다시 한번 뵙도록 해요."

"그래, 잘가."


누군가가 당신을 불렀어. 알겠다고 답하며 당신은 내게 인사를 고했지. 그리곤 이어진 내 대답에 당신은 손을 세차게 흔들면서, 그들에게 돌아갔어.


"...이런."


들고있던 사이다에 물방울이 떨어졌어. 끼고 있던 장갑들을 주머니에 넣고는, 사이다 캔을 열었지. 취지익, 이라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감촉이 내 손에 느껴졌어. 


"시원하게 먹을려고 뽑은거였는데."


당신과 이야기하느라, 사이다는 이미 미적지근해진지 오래였지. 안타까움의 탄식을 내뱉곤 사이다를 마셨어.

"... ... ."

톡 쏘는 사이다의 느낌이, 마치 당신과 같아서 기분이 묘해졌어. 






"오늘은 무슨 일인거야?"

"시간이 남아서요."


차가운 비가 쏟아지는 밖. 갑자기 몸에 닿지 않는 빗방울에 의문이 들었어. 고개를 들었더니, 큰 우산이 내게 씌워져 있었지. 시선을 좀 더 옆으로 돌리니,
당신이 옅은 미소를 지은 체로 날 바라보고 있었어. 


"밖에 나올 정도로, 당신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지 않아?"

"그건 지수씨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울프팩에서 리더격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누가 그런 말도 안돼는 소리를."


내 말에 당신은 푸핫, 이라며 한 손으로 입을 가렸어. 무엇이 그리도 웃긴지. 웃음소리를 끄흑거리며 참으면서 말이야. 그리곤 못 참겠다는 듯 크게 웃어대다가, 일정시간이 지나자마자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어. 


"요즘에 흰 백발머리의 소년이 그렇게 소문이 자자하던데 말이에요."

"아아, [     ] 말하는거야?"

"그래요, 그 소년. 어린 나이인데도 불과하고 다들 잘한다고 평이 자자해요."

 
우리 팀원들에 대해서 뭐 그리도 자세히도 알던지.
계속 우리팀에 대해서 칭찬을 하던 당신은, 갑자기 조용해졌어.


"...?"

당신을 바라보았어.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는 진지한 표정이었지. 입술을 달싹거리다 닫았다를 반복하던 당신은 갑자기 내게 말했어. 

"저, 지수씨 좋아합니다. 저와 결혼해주시겠어요?"

"뭐?"


"처음에 저희가 위험에 처했을 때, 절대로 구하지 말라는 상부층의 명령에도. 달려와주셨잖아요. 클로저는 서로 도와야하는거라면서요."

"사람 목숨이 달려있는데, 그런 상층부의 명령을 어떻게 받아들여. 구할 수 있으면 구해야지."

"푸하하, 역시 지수씨답네요."


갑작스런 고백에 머릿속은 이미 어질거리는데, 당신은 자신이 뭘했냐는 듯 호탕하게 웃었다. 아니, 이런 상황에 웃음이 나오는거야?


"지금 그 말, 고백인거야?"

"그럼 고백이 아니면 뭐겠어요."

떨어지는 빗소리를 음향 삼아, 우리는 길거리에서 서로를 마주보았어. 
씨익 올라가는 당신의 입꼬리가, 뭔가 평소와는 조금 더 다른 감정으로 다
가왔지.

"나 요리도 못하고, 집안일도 못해."

"그럼 제가 하면 되죠."

"클로저로서, 항상 바빠서 집에 있지도 못할거야."

"이렇게 가끔 가다 만나면 되죠."

지금 당신은,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전혀 들으려 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았어. 
하지만 그 말들을 듣는 동안에도, 어쩐지 두려움보다는 평온한 마음부터 떠올랐어. 

"... ... ."

"... ... ." 

어느새 머릿속은 상쾌해진 느낌. 전부터 느끼던 이 감정은, 이미 답이 정해져
있었지. 

"좋아, 그럼 사귀는걸로 할까?"

"정말이요?!"

"뭘 그렇게 놀래?"

"그야, 차이면 어떡하나 고민하고 있었으니까요." 

"소심한 남자네."

나는 당신에게서 등을 돌렸어. 찰박거리는 빗방울이 내 발목에 튀었지. 이런 내 행동에 당신은 살짝 당황한듯 싶더니, 다시 우산을 내쪽으로 기울였어.

"그럼 아이 이름은 어떻게 할까요?"

"그건 천천히 정하는 게 낫지 않아?"

"생각해둔게 없으시면, '이세하' 
라는 이름은 어떠세요?"

"이세하? 아들한테 어울릴 이름 같
은데."

만약에 아이를 낳아서, 당신과 단란한 가정 이룬다면 좋겠네. 우리 셋이서 항상 놀러 다니고. 웃고 다니면서 말이야. 





Posted by GreenP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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